[표준연 화요음악감상회에 보낸 편지 1985.8]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여름 공연

김 진 오

화음회 회원들께

지난 겨울엔 추워서 감상 모임을 제대로 못했는데 여름엔 덥더라도 잘 진행되 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간 어떻게 달라졌을까 궁금하고요. 나는 9월초부터 학 기가 시작되는데, 지난 두달간 말 배우느라 바쁘게 지낸 나날이었습니다. 한마디 라도 더 배우고자 열심히 했음에도 크게 나아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워낙 말주 변이 없다보니 다른 나라 말 배우는 데에도 시간이 많이 걸리는가 봅니다. 그래 도 생활에는 어느 정도 적응하여 식당에서 서툴지 않은 칼솜씨를 갖게 되었습니 다.

한 구내 식당에 피아노가 놓여 있는 게 인상적입니다. 식사 마친 학생들이 오 가며 두드리는 음악을 들으며, 영어보다 듣기 좋은 세계 공통어에 이끌리기도 했 습니다. 영화 '스팅'의 주제가가 흘러나와 속으로 따라 흥얼대게 하는가 하면, 베 토벤의 소나타 '월광'이 연주되어 갈채를 보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하기도 하더 군요.

식당에서 사귄 미국인 친구가 한번은 '핸들' 운운하기에 무슨 핸들을 말하는 거냐고 물었습니다. 자전거에도 핸들이 있고 하니 핸들이 한두가지냐고 그랬더 니, 이 친구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Hndel'은 한사람밖에 없다고 하더군요. 미국식 발음을 미처 알아두지 못했던 탓이었지요. 무안을 감추고자 '메시아'를 좋 아하냐고 물었는데 이게 또다른 화근이었습니다. 한참 생각하더니 이번엔 그가 묻더군요. '머사이어'를 말하고자 하는 거냐고. 지금은 아파트로 이사해 자취생활 을 시작해서 식사가 낙이 아니라 말 그대로 먹는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이곳에 오면서 가졌던 기대 중의 하나는 Philadelphia Orchestra의 공연을 현 지에서 구경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본고장 무대는 Philadelphia 시내 중심가 에 있는 Academy of Music이라는 명칭의 연주회장입니다. 개강하기 전에 시간 있을 때 한번 관람하고자 했는데 애석하게도 Ricardo Muti의 지휘에 의한 연주는 10월부터 5월 사이에만 있다고 하여 아직 구경을 못했습니다.

대신에 여름동안에 많은 사람들에게 감상의 기회를 주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 다. 만명 가까이 수용할 수 있는 Mann Music Center라는 반야외 음악당이 시 외곽에 있는데, 1/3 정도의 좌석은 유료이지만 나머지는 무료로서 신문에 광고를 내어 여기에 신청한 사람들에게 무료 티켓을 보내줍니다. 이 케이스로 한번 가서 그들의 연주를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일주일에 세 번씩 공연을 갖는 교향악단의 역량도 놀라웠지만, 자주있는 공연인데도 그 넓은 객석을 거의 다 채우는 시민들 의 관심이 더욱 놀라웠습니다.

지금은 틈만 있으면 영어공부를 해야 할 상황이라, 가지고 온 30여개의 음악 테이프 중 Suppe의 서곡 모음을 한번 들었을 뿐, 카세트 플레이어는 영어 테이프 돌리기에 바쁜 게 안타깝습니다. 다시 시작하는 공부에 기대를 걸며, 다소 긴장 도 하면서 개학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화음회 회원들 모두 뜻있는 생활 을 하시기 바라며 이만 펜을 놓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