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실대학신문 2003년 5월 12일] 월요시평

 

인간 중심의 학문


김진오 기계공학과 교수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들린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이번에는 이공계가 위기라는 말이 들린다.  어찌 보면 상업적인 매스컴들이 그러한 상황을 부추기는 면도 있다.  연예계에 스타로 뜨거나 복권에 당첨되면 하루 아침에 부자가 되고 인생을 역전시킬 수 있다고 떠들어 대는데, 젊은이들이 무슨 낙으로 힘든 공부를 하고 싶겠는가?

     과거라는 시험을 통해 벼슬을 하던 시대에 비해서 인문학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아지기는 했지만, 인간이 존재하는 한 인간의 본질을 다루는 인문학도 존속할 것이다.  산업혁명을 거쳐 꽃을 피운 공학은 어떠할까?  이 또한 인간과의 관계를 조명함으로써 판단이 가능할 것이다.

     '공학이란 무엇인가?' 학기초 첫 시간에 학생들에게 던지는 질문이며, 간혹 시험 문제에 포함시키기도 하는 질문이다.  이에 대한 답변으로 쉽게 나오는 것이 '인간의 생활을 편리하게 하기 위한 학문'이다.  이는 사실 공학의 정의라기 보다는 목적에 해당한다.

     인간의 생활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서 '자연과학의 원리에 근거하여 제품이나 구조물을 설계하고 기술을 활용하여 생산 또는 제작하며 장치 운용을 하는 것'이 공학이다.  그러므로 공학의 궁극적 대상은 인간이다.  자동차를 만들어 생활을 편리하게 하는 한 편, 교통사고를 예방하고 사고가 나더라도 인명 피해가 최소화 되는 차를 만드는 것도 공학도의 몫이다.

     공학의 주체가 인간이다 보니, 많은 성공의 이면에 적지 않은 실패 사례들이 있다.  1940년에 완공된 미국 타코마의 현수교는 설계시 진동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기 때문에 바람에 의해 공진이 발생하여 3개월 만에 붕괴되었다.  호화여객선 타이타닉은 웬만한 충돌에도 끄떡없도록 제작되었다고 했으나, 금속이 낮은 온도에서 취약해지는 성질이 간과되었기 때문에 빙산과의 충돌 때 예상보다 심각하게 파손되어 첫 출항 때에 침몰하였다.

     인간에게 있을 수 있는 무지와 부주의와 탐욕으로 인한 실패 사례는 우리의 주변에서 쉽게 발견된다.  인간의 무지로 인해 다리 상판이 떨어졌고, 인간의 부주의로 인해 지하철 공사장에서 가스 폭발이 일어났으며,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백화점 건물이 붕괴되어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누구보다도 공학을 하는 사람은 인간을 학문의 중심에 놓는 자세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컴퓨터 기술의 발달에 따라 설계를 컴퓨터에 의존하는데, 설계 인자를 설정하는 것은 인간이고, 컴퓨터 프로그램을 작성하는 것도 인간이다. 다행스럽게도 학습 능력이 뛰어난 인간은 과거의 성공과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 미래로 나아간다.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변천했을 때에 농학이 고사하지 않았다.  오히려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좀더 인간답게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하였다.  발달하는 공학과의 접목을 통해 인간의 육체노동 의존도가 줄어들었다.  종사자 수가 적게 필요하게 되었을 뿐이다.

     산업혁명 훨씬 이전인 고대에도 공학은 인간 사회에 함께 존재하였다.  이는 산업사회에서 현재 변천하는 정보화 사회나 향후의 어떠한 사회에서도 인간이 있는 곳에 공학이 존재하리라는 걸 짐작하게 한다.  다만, 산업이 팽창할 때에 많은 인력이 필요했던 구조가 자동화를 통해 소수 정예 위주로 바뀌어 가리라 예상된다.

     공학이라는 학문은 그 주체가 인간일 뿐만 아니라 대상 또한 인간이다.  현재 대두되는 위기를 기회로 삼아 거듭남으로써, 인간의 행복 추구와 복지 향상에 꾸준히 기여하리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