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기계동문회보 2002년 여름호] 추도문

 

먼저 떠난 친구들을 생각하며....

 
심 중 식 (기계설계학과 1977년 입학)

 

    한단지몽邯鄲之夢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옛날 당나라 시절에 산동에 사는 어떤 노생盧生이라는 젊은이가 과거를 보기 위해 장안으로 가던 중 한단邯鄲이라는 곳에 이르렀다. 날이 저물어 하룻밤 쉬기로 하고 주막에 들렀는데 그곳에는 이미 여옹이라는 어떤 노인이 묵고 있었다. 여옹은 젊은이에게 자초지종을 묻고는 피곤하겠다며 저녁을 들기 전에 우선 한잠 자고 쉬라며 베개를 꺼내 주었다. 그 때 밖에서는 저녁을 짓기 위해 막 불을 지피고 있었다. 젊은이는 베개에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노생은 꿈속에서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살이를 하게 되었다. 재상까지 높아져 황제를 보필하며 명재상으로 이름이 나기도 하다가 갑자기 역적으로 몰려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하는 등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며 일생을 보냈다. 하여튼 행복한 만년을 누리게 되었는데 천수가 다 하여 죽게되었다. 그 순간에 노생은 잠을 깼는데 눈을 떠보니 꿈이었다. 자기 곁에서 여옹은 여전히 앉아있었고 밖에서는 밥솥의 장작불이 타고 있었다. 주막 주인이 짓던 저녁밥이 아직 채 익지도 않았다. 저녁 짓는데 걸리는 시간도 되지 못한 그 짧은 순간에 노생은 꿈속에서 일생을 살았던 것이다.


    우리는 인생이 꿈같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인생이란 한때의 꿈이라는 것이다. 인생이 꿈인데 그것도 한때의 꿈이다. 꽃이 피는 것도 한때요 인생도 한때다. 한때, 일시一時라는 것인데 이 말이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어려운 말로 하자면 시절인연時節因緣을 본다는 것이다. 때가 맺어주는 인연因緣을 보는 것이다. 봄이라는 때가 와서 꽃이 피는데 그 꽃은 온 우주적 존재의 연기緣起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꽃이 피는 그 때가 한때다. 한때 꽃이 피는 것이다. 일시에 꽃이 피는 것이다. 봄이라는 때(時)가 와서 꽃이라는 생명과 딱 일치하는 그 순간에(節) 그 하나의 생명을 피우기 위해 온 우주가 참여하고 있음(因緣)을 보는 것이다. 그래서 동시同時라는 말도 한다. 석가성불釋迦成佛에 산천초목山川草木 동시성불同時成佛이다. 석가가 성불하니 산천초목이 일시에 부처가 되었다. 봄이 오니 모든 풀들이 일시에 꽃을 피우게 되었다. 그것이 일시一時라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찰나 속에서 영원을 본다는 것이다. 하나에서 일체를 보는 것이요 일체에서 하나를 보는 것이다. 허무 속에서 실존을 발견하는 것이다.


    86년에 승훈이가 세상을 떠나더니 올해는 현기가 먼저 갔다. 갑자기 덮치는 암의 그물에 걸리면 누구나 빠져 나오기 힘든 모양이다. 외롭게 병마와 씨름하다 떠난 친구들을 생각할 때마다 무기력한 자신의 모습에 슬퍼지곤 한다. 승훈이나 현기 모두 얼마나 훌륭한 친구들인가. 그들은 시름한 모습의 나를 보면 항상 힘내라며 격려해주었고 유쾌한 웃음으로 맞아주었다. 공릉동 캠퍼스 잔디밭에서, 또는 학교 앞 칼국수 라면 집에서, 허름한 청암동 기숙사 방안에서, 그들과 함께 소탈하게 웃고 떠들던 한때가 언뜻언뜻 샘물처럼 솟구치면 내 가슴은 아득한 그리움으로 번져난다. 스포츠를 좋아했던 승훈이와는 탁구를 즐겼고 음악을 좋아했던 현기는 방으로 찾아간 나에게 기타를 연주해주기도 했다. 어느 가을 날 청암사 앞뜰에서 졸음에 겨운 내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주던 현기의 다정한 모습이 언제나 사진보다 더 생생하게 내 맘속에 살아난다. 씩씩하게 콧바람을 일으키며 다가와 등을 탁 치면서 말을 걸던 승훈이의 모습도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영상이다.


    우리가 사는 것은 다 한때다. 한때란 그저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순간 속에 영원이 깃들어 있는 사랑의 한때다. 함께 낙엽을 밟고, 함께 음악을 듣고, 함께 운동을 하고, 함께 풀잎에 떨어지는 가을 햇살을 바라보며 웃음 짓던, 그런 한때는 객관적으로 보면 사소하고 시시해서 허무한 한때지만, 그러나 그것들이 순수한 주체의 경험이 되면 그 속에는 한없는 진실이 담기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십년을 사느냐 백년을 사느냐 그것이 문제가 아니다. 십년을 사나 백년을 사나 다 한때지 다른 것이 아니다. 지위가 얼마나 높았느냐, 재산을 얼마나 모았느냐, 지식을 얼마나 쌓았느냐, 그런 것도 문제가 아니다. 지위도 한때요 재산도 한때요 명예도 한때다. 문제는 한때가 그런 허무한 한때가 아니라 영원한 한때, 정말 얼마나 순수하고 진실한 한때를 가졌느냐는 것이다.


    가장 순수한 것이 무엇인가. 진리라는 것이다. 가장 진실한 것이 무엇인가. 사랑이라는 것이다. 이 진리와 사랑이 합해져서 영원한 한때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것이 다 한때지만 그러나 그 한때 속에 진리와 사랑이 담겨있을 때 우리는 영원한 한때를 사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진리탐구와 우정의 길을 함께 걸었던 승훈이나 현기의 삶도 비록 짧은 생을 마쳤지만 나에게는 영원한 사랑의 한때로 살아있다. 그래서 그들의 숨결은 오늘도 내 마음속에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 중에서 한 구절을 읊어 그들의 영전에 바친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2002.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