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우들에게 드리고 싶은 이야기, 1980. 9. 5.]

공학도의 삶의 자세

심 중 식

(필자는 당시 서울대 기계설계학과 4학년생이었고, 현재 MARC Korea 지사장)

참다운 인생을 살고자 노력하는 친우들과 진지한 대화를 하고 싶은 마음에서 서투른 글이나 쓰고자 한다. 어느 누가 참되게 살려고 노력하지 않을까만 참되다 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가는 밝히기도 어렵고 개인에 따라 달라지기도 할 것이 다. 이 글에서는 공학을 전공하고 머지않아 사회로 진출할 벗들에게 공학인이 자 칫 소홀하기 쉬운 점들을 염두에 두고 쓰려하지만 나 자신이 같은 공학인이기 때 문에 갖는 한계점이 많으리라 염려한다.

먼저 우리가 무엇을 공부하거나 무엇에 종사하거나 간에 우리는 사람이며 그 렇기 때문에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답다는 것은 무엇을 말함인가? 어려운 물음이지만 우리는 많은 철학자들로부터 많은 대답을 들어왔다. 이 문제는 여기서 깊이 음미 해볼 수 없지만 간단히 동물과 사람을 구별해 봄으 로써 상식적 결론을 얻고자 한다. 사람이 동물과 구별되는 점들도 여러 가지가 지 적되어 왔다. 즉 사람을 정신적 존재, 노동하는 동물, 도구를 사용하는 동물, 사회 적인 동물, 상징적 동물, 천사와 동물의 중간적 존재, 윤리적 동물 등등으로 구별 하여 각기 나름대로 독특하고 훌륭한 학문·사상을 전개했다.

사람이 정신적 존재임은 누구나 긍정한다. 그러나 정신적 존재를 강조할 때 사 람도 동물이라는 사실을 소홀하기 쉽다. 그리고 요즈음은 동물도 정신을 가지고 있으며 식물이나 심지어 무생물까지도 정신이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가 있다고 한 다. 이제 정신은 사람에게만 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사람의 정신작용이 동 물의 그것과 같지 않으며 훨씬 뛰어남은 부정 못할 일이다. 사람의 정신작용이 동 물의 정신작용과 어떠한 질적 차이가 있는지 근본적 규명은 나로서 할 수도 없으 려니와 이 글의 목적도 아니다. 다만 사람이 사람됨은 이 뛰어난 정신작용의 결과 라는 점을 주장할 뿐이다. 바로 이 정신작용의 질적 차이로 말미암아 사람의 생각 이 뛰어나고 이 뛰어난 생각 때문에 사람은 불을 발견해서 사용하게 되었으며 도 구를 만들어 자연을 경작하는 노동을 하게 되었으며 언어와 문자를 사용하여 문 화와 문명을 쌓아가고 발전시켜 오늘날의 거대한 인간으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나는 사람을 "생각하는 동물"이라고 규정하고자 한다.

이제 우리는 이 뛰어난 생각으로 "생각이 뛰어난 동물"과 그들이 사는 사회를 들여다보자. 원시시대의 수렵채취의 생활에서부터 불경하게도(?) 달나라에 두꺼운 옷을 입고 로켓트로 다녀와서는 우주정복이라고 큰소리치며 뻐기는 호기심 많고 장난 많은 오늘의 인간들이 사는 현대사회까지 훑어 봤다고 하자. 인간의 그 생각 함 때문에 갖는 두드러진 특징 중에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점은 무엇인가?

사람은 깊이 생각하게 됨에 따라 생물학적 욕구충족만으로 만족하지 않게 되 었으며 자신을 객관화시켜 성찰해 보려는 노력이 끊임없었다. 그리하여 실존의 문 제 즉 나는 어디서 나서 어디로 가는가. 나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가. 무엇 때 문에 사는가 등등의 물음과 우주자연의 법칙 등에 대한 물음을 갖게 되었으며 모 든 고통과 무지와 편견으로부터 벗어나고 유한성을 극복하여 깨달음의 경지에서 절대자유 하고자 노력하였다. 이러한 참을 깨달으려는 마음 자아를 찾고자 노력하 는 정신을 자유정신이라 이름한다면 이 자유정신이야말로 생각하는 인간의 중요 한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인간이 문화문명을 창조 발전시켜왔다는 점이다. 그리 고 문화문명을 창조 발전시켜온 인간에게 생각이 깊어짐에 따라 현대에 와서 매 우 달라지게 된 것은 역사의식이다. 19세기 전반만 하더라도 사람들이 역사를 해 석하려는 시도가 거의 없었다. 역사의 흐름은 인간 권한 밖의 일로 여겼으며 역사 를 서술할 적에도 사실을 사실대로만 기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겼으 며 역사를 사회 전체적인 안목에서 바라보지 못했다. 그만큼 역사란 개념이 인간 들의 의식 속에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헤겔에 이르러서 역사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나타났다. 즉 역사를 어떻 게 이해할 것인가, 어떻게 발전해 왔고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 것인가라는 의문을 갖고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을 역사적 경험에서 찾으려는 의도로 역사를 파악하고 자 했다. 이제는 역사는 자유를 향한 진보로서 이해되기 시작했으며 인간은 역사 적 비전을 갖고 역사 창조의 주체자로서 살아가야 한다는 인식이 퍼지게 되었다. 즉 인간은 역사의 산물이지만 역사는 인간에 의하여 만들어진다는 인식이 보편화 되어 위정자들의 입에서도 '새역사를 창조하자'는 소리가 거침없이 튀어나오게 되 었다. 확실히, 역사는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는 것과 역사창조의 주체가 민중 이라는 의식은 현대에 와서 인간의 사고에 크게 달라진 점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생각하는 사람'이 오늘날에 와서 갖게되는 중요한 두드러진 특징은 '자유정신'과 '역사의식'이라는 점을 이야기했다. '자유정신'은 사람의 내면 세계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것이며 '역사의식'은 외부세계에 대한 깨달음을 말한 다고 할 수 있다. 이 두 깨달음은 결국 하나로 조화 통일 될 것이며 이 깨달음으 로 훌륭한 인격이 형성되리라 믿는 까닭에 나는 사람됨의 기준을 이 자유정신(깊 은영혼)과 역사의식에 두고자 하는 것이다.

이제 이 기준에 따라 오늘의 우리와 우리 사회를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우리 에게 얼마만큼의 자유정신이 발달했나? 인생에 대한 얼마만큼의 깨달음을 가졌는 가? 우리들의 영혼이 너무나도 빈약함을 느낀다. 책임은 개인에게도 있고 사회에 도 있다. 사람은 사회를 구성하지만 또한 사회에 의해 사람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오늘의 사회의 어떠한 요인이 우리들의 정신을 빈약하게 했는가? 지나친 물량주 의와 그로 말미암은 인간 존엄성의 상실 때문이다. 오늘의 물량주의는 모든 가치 를 상품화 해버렸으며 인간적 가치를 하락시키고 물질숭배를 낳았다. 사회는 인간 의 감각을 자극시키는 물질로 가득 차서 우리의 감각은 조금도 쉴 틈이 없다. 사 방에서 유혹의 손길이 미치고 사방에 위험이 도사려 경계의 순간이 그칠 새 없다.

감각의 자극은 몸을 지치게 하고 지친 몸은 마음을 상하게 하며 상한 마음은 혼 의 자람을 방해하고 혼의 자람 없이 영을 붙들 수 없다. 이 찢어진 마음에서 생겨 나는 가치관은 감각적 쾌락주의요 향락주의 인생관이다. 그래서 흔히들 다음과 같 이 주장한다. '인생은 즐기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쾌락을 위해서 노력하 는 것이며 자신의 능력에 따라 남에게 직접 해를 끼치지 않는 범위에서, 그리고 그 사회의 도덕적 범위 안에서 즐긴다면 상관할 게 뭐냐.'

이러한 가치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생각의 하나가 '모든 인간은 이기적이다. 인간 행위 가치 기준은 무의미한 것이다.'라는 것이다. 즉 이웃이나 민족을 위해 희생하는 것도 결국 자신의 정신적 만족을 위해 서라고 볼 수 있으니 이기주의 아니냐고 말한다. 남을 위해 봉사하는 것도 훌륭한 인격을 닦는 것도 모두가 개인의 어떠한 목적을 위해하는 것이니 이기주의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의 모든 행위가 이기적이 되고 그렇기 때문에 가치기준은 무의미한 것이라는 것이다. 참으로 그럴듯한 혼란이다. 그러나 인간의 모든 행위 를 이기적으로 본다면 이기적이라는 낱말을 쓰는 의미가 없어질 것이다. 이 문제 에 대하여 길게 끌고 싶지 않다. 밝혀둘 것은 인간의 행위에는 自利利他적인 행위 가 있고 이것은 이기적이라 부를 수 없는 것이다. 아무튼 이기적이냐 아니냐로 가 치 판단을 함에는 많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이제 감각적 쾌락주의와 향락주의가 지닌 문제점을 살펴보자. 우선 이들이 추 구하는 것은 대개 물적인 것이다. 즉 권력과 재화와 관능의 쾌락이다. 인간도 동 물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생물학적 욕구를 위해 물적 요소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인간은 기본적 욕구 충족은 거의 되어있으나 욕망이 극대화되었기 때문 에 물적 요소들은 매우 커다란 경쟁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오늘날 돈과 권력과 관능적 쾌락을 향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그 속에서 온갖 죄악이 범람하 고 비인간화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가 향락주의자들로 가득찰때 그 사회는 온전할 수 없으며 결국에는 혼란 속에 파멸을 가져오리라 추측한다. 그밖 에 향락주의가 올바른 사회를 이룰 수 없음을 밝혀볼 수 있으나 또 다른 면에서 중요한 점은 향락주의자 자신의 파멸에 있다. 왜냐하면 향락주의란 것이 자아의 상실로 말미암아 형성된 가치관이기 때문에 결국은 허무와 고독과 무기력 속에서 방황하게 되며 깊은 절망 속에서 허우적이다가 의미 없는 인생을 마쳐 버리기 때 문이다. 향락주의자는 즉시 인생관을 바꾸고 자아를 찾아 노력하면서 깊은 영혼을 길러나가야 할 것이다.

그런데 건전한 자아를 성숙시키기 위해서는 건전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 건전 한 사회를 위해서는 바람직한 가치관이 필요하다. 결국은 변증법적인 대답이 있을 뿐이다. 즉 인간혁명과 사회혁명이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한다. 생명을 존중하고 인간의 존엄성에 바탕을 둔 가치관과 인생관으로 자아혁신을 끊임없이 추구하고 동시에 보다나은 사회를 위해 노력해야한다. 인간혁명없이 사회혁명없고 사회혁명 없이 인간혁명 없다.

오늘의 사회가 물량주의로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과학기술의 발달과 사회제도의 불합리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공학도인 이상 과학 기술에 보다 더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기술 발달의 가장 긍정적 요인은 생산력 증대라 고 볼 수 있다. 생산력 증대는 인류에게 훨씬 풍요로운 물질문명을 향유할 수 있 게 해준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어느 집단이나 국가이건 기술의 발달을 매우 중요 시 여기고 과학기술의 발달에 힘을 기울인다. 그리하여 오늘날 과학기술과 기술문 명은 우리의 중요한 환경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여기에 대한 학자들의 해석도 구구하다. 아무튼 과학기술은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인간을 보다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기능을 가졌음은 사실이라고 보며 오늘에 있어서도 기술후진집단은 선진 기술집단에 여러 압박과 착취를 당하기 쉽다고 보기 때문에 기술 개발은 매우 필 요한 것이라고 주장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기술 문명의 부정적 역할도 간과해서 는 안될 것이다. 즉 앞서 말한 물량주의로 될 위험인데 그것은 자연에 대한 기술 적 지배에다 힘을 기울이다보면 인간의 도덕적 힘이나 인간적인 사회를 위한 지 식과 노력이 등한하게 되어 비뚤어진 사회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의 한가 지 현상은 과학 기술이 본래적인 인간해방이라는 기능을 수행하기보다는 오히려 국가조직의 강화를 가져와서 인간억압과 인간 소외를 낳게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기술의 긍정적 기능인 생활향상과 인간 해방과 복지를 위해서 사용되어지 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며 인간과 사회를 억압하거나 평화를 파괴하는데 사용되지 않도록 단결해서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과학기술의 발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학문의 세계가 물질의 것이기 때문에 자칫 인간에 대한 관심을 소홀히 하기 쉽다. 우리가 인간이며 우리는 인간 들과 더불어 살고 있으며 우리가 하는 학문도 바로 우리인간들을 위해서 행해져 야 한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망각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과학기술의 궁극적 목표 는 인간을 해방시키고 보다 자유로워진 인간들이 보다 더 풍부한 정신생활, 창조 의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있다고 볼 때 시간적 여유를 혼을 기르는데 사용 하지 않고 물질적 쾌락을 얻는데 사용하는 현실은 심히 불안하다. 이제는 오늘의 우리 역사적 상황을 살펴보자. 많은 역사학자들의 업적에 의해 현대는 민중의 시 대이며 우리의 역사적 목표는 근대화와 민주평화통일이라고 밝혀졌다.

민중 시대란 역사의 주체가 민중이라는 것이며 이 말은 다르게 역사적 목표 (민족의 이념)를 위해서 분명한 역사의식을 지니고 살아갈 때 민중적 삶을 산다고 말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할 수 있다. 조국의 근대화 내용에는 반식민 반봉건이라 는 의미가 포함된다고 볼 때도 과학기술의 발전은 필요요소이다. 그러나 기술 개 발은 뜻있는 몇몇 사람들의 헌신적인 노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필요함을 제 아무리 역설해도 그것은 기술 개발이 사회적 필요가 되도록 사회경제의 제도적 조건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효과가 없을 것이다. 사회의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생산력 발전을 억압하거나 저해하는 제도적 장치를 타파해야 한다.

기술도 생산력이다. 그래서 우리는 근대화에서 기술개발이 갖는 중요성의 인식 과 함께 기술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을 구조적 측면에서 분석하고 낡은 제도를 새 롭게 고쳐나가는 일이 중요함을 알아야 한다. 제도를 고침에는 분명한 논리와 단 결된 힘이 필요하다. 기술인이 가지는 현재의 위치(기능인)에서 창조인의 위치로 등장하기 위해서도 이 문제는 대단히 중요하다고 본다.

역사창조의 주체로서의 인식도 없이 그저 안일하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술 을 이용해서 그때 그 때 필요한 역할만을 수행하는 기능인으로 전락할 때는 스스 로 노예적인 삶에 만족하는 것이며 인간으로서 참된 삶과는 멀어질 것이다. 우리 의 역사적 상황과 민중적 삶에 대해서 중요한 점을 언급하지 못하고 이제까지의 내용을 간단히 결론 요약한다.

첫째, 우리는 기술 발전을 위해 열심히 연구 노력하되 얽매이지 않는다. 즉, 연 구하는 자신의 행위가 단지 생활 수단이나 방편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아 실현 의 창조적 행위가 되도록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아를 발견해서 영혼을 간직하 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며 기술 발전이 우리현실에서 가지는 의미를 넓은 안목에 서 바라 볼 수 있어야 하리라.

둘째, 우리 자신이 사회적 존재임을 깊이 인식하여 분명한 사회 의식과 역사의 식을 지니고 역사 창조의 주체자로서의 삶-민중적 삶을 영위해야 할 것이다. 즉, 평화통일에 대한 염원을 갖고 모든 불의 부정 억압 불평등 요소들과 싸우면서 보 다 자유롭고 평등하고 평화로운 내일의 건설에 앞장서야 하리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