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종합기술원 사보 1997년 8월호]

경계주의보! 천사병

박준철 주임 / 수퍼컴응용Lab

제2차 '97 사회봉사담당자 교육이 7월에 있었다. 수원 라비돌리조트에서 1박2 일 동안 진행된 이번 교육에서는 사회봉사 전반에 걸친 강의와 그룹내의 봉사활 동에 관한 토론 등 짧은 기간이었지만, 다양한 교육과정들이 진행되었다.

다음 문제에 당신은 몇 번을 선택하겠는가.

문제) 당신은 대한민국사람으로 태어나서 우리나라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가?

① 불행하다 ② 위험하다

③ 자랑스럽다 ④ 걱정스럽다.

초등학교 2학년 짜리 강사의 자녀가 학교에서 본 시험문제다. 그 아이는 이 문제 의 답을 ④번으로 표기했기 때문에 이 문제를 맞추지 못했다고 한다. 실제로 교육 에 참여한 사회봉사담당자들 대부분의 의견도 ④번이었다. 물론 도덕교과서에 근 거한 이 문제의 정답은 ③번이다. 어느새 우리나라에서는 정답이 정답이 될 수 없 는 그런 나라가 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 우리나라가 자랑스럽게 느껴질 수 있게 하는 것, 우리의 힘으로 우리나라를 자랑스럽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사회봉사 활동의 의미이다.

사회봉사는 여러 가지로 설명되어질 수 있다. "누군가 해야만 하는 일", "우리 가 누리고 있는 자유의 대가", "사회의 틈새를 메우는 작업", "제4의 물결", "21세 기의 새로운 자아실현 방법"등 수많은 정의가 이미 내려져 있다. 하지만 결국 우 린 서로를 위한 마음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지만, 말이나 생각만으로는 그 의미를 알 수도 예상할 수도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봉사라 하면 남을 돕는 일 혹은 단순히 선행이라고 생 각한다. 사회봉사에서 첫 번째로 주의해야할 것이 바로 이 '천사병'이다. 내가 누 군가를 돕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해야할 일을 하는 것뿐이다. 내가 잘나서, 내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함께 사는 사회이기에 해야할 어떤 작은 부분을 할뿐이 라는 마음이 중요한 것이다. 공주병이나 왕자병보다 더 무서운 것이 바로 천사병 이다.

다음의 사례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어느 고등학교에서 한반을 두 개의 팀으로 나누어 지체장애자 목욕시켜주기 봉사활동을 하기로 결정했다. 첫 번째 팀 이 먼저 그 곳에 가서 목욕시키주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학생들은 처음 온 곳이라 낯선데다, 지체장애자는 신체장애자와는 달리 정신연령은 낮지만 신체는 성숙한 어른과 같기 때문에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아주 혼란스러워졌다. 더군다나 장애인들 도 상대방이 자신들을 꺼린다는 기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학생들은 모 두 함께 벗기를 거부하고 팬티 하나씩을 걸치고 목욕시켜 주기를 시작했고 장애 인들은 맨 알몸으로 하기 싫은 목욕을 억지로 하는 수모를 격은 꼴이 되었다.

다음날, 두 번째 팀이 그 곳에 도착하였다. 이미 전날 친구들로 이 이야기를 모두 들은 터라 모두들 잔뜩 겁을 먹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계 획이 변경되어 오늘은 축구를 하고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함 성을 지르며 와르르 운동장으로 달려갔다. 그들은 한 낮의 더위도 아랑곳 않고 장 애인들과 함께 어우러져 금방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축구가 끝나자 "여러분, 더워 요? 자, 그러면 친구들 손잡고 모두 목욕탕으로!" 인솔자가 목욕탕에 가 있을 땐, 이미 모두 알몸으로 자기와 같은 팀이었던 장애인들과 물장난을 치며, 서로의 몸 을 씻겨 주고 있었다. 목욕이 끝나고 한 학생이 인솔자에게 물었다. "질문 있습니 다. 그런데, 저희는 언제 봉사활동을 시작해요?"

우리가 어떤 봉사활동을 계획하고 프로그램을 만들 때, 우리 입장에서 '도움'에 만 신경을 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변화'가 없는 도움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하루 와서 억지로 목욕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정말 좋아하고 함께 스스럼없이 목욕할 수 있는 바로 그러한 친구가 필요한 것이었다. 물론, 이 이야기에는 봉사할동 리더들의 책임도 크다는 것이 내포되어 있다. 그래서, 이 교육을 받았던 리더들은 한층 더 무거운 책임감 을 느끼며 동료들이 있는 회사로 돌아가야 했다.

봉사활동의 범위는 정해져 있지 않다. 거리의 휴지를 줍는 것 또한 그 범위 안 에 들 수 있고, 하반신 불구자의 대변을 처리해 주는 일 또한 사회 봉사이다. 봉 사활동마다 쉽고 어려움이 다르고, 깨닫는 것 또한 다르다. 요즘 사회봉사가 사회 에 널리 퍼지면서 형식적인 봉사활동도 늘어가고 있다고 한다. 무엇을 해야할지 몰라서, 누구를 도와야할지 몰라서, 가뜩이나 바쁜 회사 생활도 버티기 힘든데 그 럴만한 생활여유가 없어서라며 우리자신을 회피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형식적인 봉사활동이 늘어가면서 몇 가지 병폐가 생겨났다. 모두들 눈에 잘 띄 고, 뭔가 드러나는 일 그러면서도 별로 어렵지 않은 일을 선호하게 된 것이다. 그 래서 노인정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어버이 날만 되면 곤욕을 치러야 한다. 점심 을 세 번이나 드셔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찾아온 것도 고마운데, 어떻게 차 려온 음식을 안 먹을 수 있나 하시면서….

봉사활동은 그렇게 어려운 것만은 아니다.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은 쉬운 일부 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면, 기술원에서 하고 있는 환경정화운동같은 것이 그 예가 되지 않을까. 처음부터 지체장애자들을 돕는다거나 하는 활동은 쉽지 않 기 마련이니까 작은 봉사활동이 자신의 생활의 일부가 되었을 때 그 때 비로소 우리 사회는 환한 웃음을 간직하게 될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