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종합기술원 사보 1994년 6월호] 연우가족 초대석

"엄마, 아빠 삼성 다니지?"

김 정 숙 (김진오 수석 부인)

여느날과 다름없이 한낮(?)에 귀가한 남편이 불쑥 신세계 상품권을 내밀면 서 사보 5월호 맨 뒷페이지를 펴 보였다. 독자엽서가 당첨되어 받은 상품이라며, 원고 청탁을 받았으니 한번 써보라는 것이 아닌가! 연애기간 동안에도 그 흔한 연애편지 한번 써 보지 않은 나에게.

사실 편지를 안 썼다기보다는 쓸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게다. 필라델피아에 있는 펜실베니아대학으로 같은 시기에 유학을 간 후 서로 모 르는 상태에서 첫해를 숨가쁘게 보내고 한숨 돌릴 즈음인 여름방학 중에 처음 만 난 우리는 그후 열달동안 거의 매일이다시피 300여번을 만나고 결혼하였다. 하루 도 빠짐없이 만나다 보니 편지가 오갈 새가 없었음은 물론이고, 늘 캠퍼스 주변이 나 도서관에서 맴돌다보니 남들 흔히 하는 근사한(?) 데이트 한번 제대로 못한 아 쉬움도 많았다.

필라델피아의 4년이 우리 가족의 시발점이라 한다면, 그후 시카고로 남편 의 직장을 따라 옮긴 후의 4년은 아들, 딸 하나씩 얻은 가족 확장의 시기였다. 이제 만 네 살이 된 첫째아이 예인(Yane, 한국명 강엽)이의 임신 기간 중에 조산 기로 겪은 우여곡절은 다 설명하려면 지면이 부족할 것이다. 그간의 두 번의 입 원, FDA에서 아직 공인되지 않았다는 조산기를 막기 위한 약품의 사용, 상태를 항시 점검하는 기계의 부착과 분만수술로 인한 병원비가 엄청난 액수였다. 다행 히 의료보험으로 전액 지불되었지만, 그 와중에 사용된 초음파라는 기술이 남편의 전공으로서 현재 우리 식구의 밥줄(?)일 뿐 아니라 첫째아이의 출산에 지대한 공 헌을 한 것이었다.

어렵게 낳은 아이지만 임신 중 철저하게 그렇게 좋아하는 커피 한잔 안 마시고, 과일 과 우유를 많이 먹여서인지 하얀 살결의 사내답지 않은 예쁘장한 얼 굴을 하고 있다. 길거리에서 만나는 미국여인들이 "How old is SHE?"라고 할 정도로. 그런데다가 머리카락이 워낙 노랗게 태어나 미국 간호원이 "네 남편이 백인이냐"고 물었던 기억이 난다. 한번은 그 머리를 박박 깎아주었더니 다행히 한국형 색깔의 머리가 얌전히 자라주었다.

반면에 전혀 어려움 없이 출산한 딸 해나는 오히려 사내아이 같이 보일 정도다. 이제 14개월 지났는데 지금까지 들어본 가장 훌륭한 찬사가 "크면 귀엽 겠다"이다. 현재는 예쁘지 않음을 신경 써서 완곡하게 표현한 것이리라. 8년전 에 유학 길에 오를 때는 홀로였는데, 금년 남편의 삼성 입사로 귀국 길에 오를 때 에는 나의 박사학위와 함께가 아니라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귀국하게 되니 묘한 기분이었다.

합리적이고 편리한 미국생활과 못 마친 학업에의 미련을 과감히 떨쳐버리 고 귀국할 수 있었던 것은 삼성의 조기출퇴근제와 남편의 금주였다. 한편 한국 의 직장인들이 보통 저녁 늦게까지 일하고 술 마시고 밤늦게 귀가하여 '아버지 부 재현상'이 일반화되어 있는데 비해 다수 미국인들의 매우 가정적인 생활에 대한 부러움은 주저하게 만든 또 하나의 요인이었다. 남편이 본래 술을 많이 마시지는 않았지만 그나마 입에도 안대기로 작심하고 (담배는 날 때부터 안 피웠다나?) 조 기출퇴근제로 일찍 귀가할 수 있다는 사실에 조금은 안심할 수 있었다.

요즈음 예인이는 친구들에게 자기 아빠가 제일 먼저 집에 온다고 자랑이 다. 예인이가 아빠 회사 이름을 제대로 알게 된 것은 빗속에 거행된 '가족초청의 날' 행사 때였다. 그전까지는 바이오냉장고를 선전하는 TV광고에서 삼성전자의 로고와 아빠의 사원증의 무늬와 똑같다는 것을 알아채고 삼성전자라고만 알고 있 었던 것이다. 언젠가 지하철을 타고 삼성역에서 내리면서 "엄마, 아빠 삼성 다니 지"하고 크게 떠들어 사람들이 웃었던 일도 생각난다.

며칠 앞으로 다가올 결혼기념일에는 신혼여행때 갔던 곳에 다시 가볼 생 각으로 들떠있다. 단둘이 갔던 곳에 이제는 두 아이가 함께 한다는 차이가 있지 만 결혼 전에 못해 본 근사한 데이트를 온 가족이 그곳에서 함께 해 볼 생각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