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키고 선한목자상동교회 회보 1992] 생수

미국 역사 속의 기독교

김 진 오

5백년전 콜럼버스의 소위 신대륙 발견이라는 사건에서부터 시작하여 청교 도들의 이주를 거쳐 2백여년 전 국가 독립을 선언하고 오늘날에 이르는 미국. 그 미국의 역사 속에 나타나는 큰 줄기는 '자본주의'와 '기독교' 간의 갈등과 조화의 반복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콜럼버스 일행이 탄 선박들이 감행한 모험 항해의 주된 목적은 인도로 가 는 새로운 무역항로를 발견하려는 것이었다. 당시 유럽의 국가들이 신비한 동양 의 나라 인도와 무역을 하며 주로 이용한 교통수단은 아프리카 대륙을 돌아서 가 야하는 머나먼 항로였다. 그때 마침 대두된 지구가 둥글다는 학설에서 힌트를 얻 어, 서쪽으로 항해를 해도 동방의 나라에 다다를 수 있다고 추측하고 이 항로가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미대륙 가까이에 있는 섬 들을 발견하여 훗날 미대륙 발견과 그후의 미국 건국의 초석이 된 이 사건은 새 로운 무역항로를 발견하여 시간과 돈을 절약해 보자는 철저한 '자본주의' 사고방 식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후 다른 탐험가들에 의해 거대한 미대륙이 확인되어, 유럽인들이 그때까 지 몰랐던 대륙의 존재가 알려지게 되었다. 당시 유럽에 널리 전파된 개신교의 신자들이 국교로 정해진 구교에 의해 신앙생활이 핍박을 받게되자 종교의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신대륙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Mayflower호가 보스턴 근교에 닻을 내린 이래 청교도들이 계속 이주하여 새로운 삶의 터전을 개척하며 교회를 세우고 훗날 '기독교'국가가 건국되는 모태를 이루어갔다.

이렇듯 목숨까지도 내걸면서 기독교 신앙을 지키고자 미대륙으로 이주해 온 그들이었건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에 근거한 죄악의 씨앗을 뿌렸으니 바로 흑인 노예 매매이다. 노예 상인들이 아프리카에서 동물 사냥하듯 잡아온 흑 인들을 사들여 농장의 힘든 일에 소 말 처럼 부려먹은 비인간적인 만행은 이중 인격적인 그리스도인의 모델을 후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때부터 시작된 흑인 문맹은 현재 미국의 사회문제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미국 사회가 곪아가는 원인을 제공하였다.

보스턴 Tea Party 사건을 기화로 발생한 영국과의 독립전쟁도 세금 문제 에 의한 것이었으니, 이 또한 '자본주의' 이념과 무관하지 않다. 이 전쟁에서의 승리로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국가 독립을 선언하게 되었다.

연방 헌법을 만들기 위해 당시의 16개 주를 대표하여 필라델피아에 모인 대표자들은 조금이라도 자기 주민들의 이익에 부합되는 방향으로 헌법이 만들어 지도록 노력하느라 서로 언쟁이 심하였고 분열하여 각각 독립된 작은 국가들로 쪼개질 위기에 처했었다고 한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고 지금까지도 지속되는 국가체제를 존속시키는 이상적인 헌법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기독교 신 앙에 바탕을 둔 화해와 화합이었다. 그들은 회의가 결렬되고 흥분하였을 때 기도 로써 하나님께 간구하여 서로를 포용하고자 하였다고 한다. 그와 같은 인내를 통 해 만들어진 헌법이 미국을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부강하게 만든 원동력이 된 것이다. 모범적인 민주국가 체제를 갖추는 데에 기여한 청교도 정신을 계승하고 자 하는 흔적이 오늘날까지도 여러 곳에 나타나고 있다. 한 예로, 지금도 통용되 는 화폐와 동전들에는 'IN GOD WE TRUST'라고 새겨져 있다. 건국 당시의 미 국 지도자들은 '자본주의' 사고 방식과 '기독교' 신앙간의 조화를 훌륭히 이루어 내었다.

인간의 존엄성을 중시하는 기독교 정신에 입각하여 미국이 건국되었건만, 영토를 넓혀가고 금광을 찾아가는 '자본주의' 의식의 발동으로 서부를 향하여 개 척해 나아가는 과정에서는 원주민인 아메리카 인디언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는 모순을 범하였다. 유럽인들에게는 신대륙이었지만 사실 그 땅의 주인이었던 원주 민들에게는 전혀 새롭지 않은 땅이었고 이주해 온 청교도들은 침입자들이었다. 애굽을 탈출한 유대인들이 가나안으로 향하면서 그곳 원주민들을 살상한 것은 하 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었으나, 서부를 개척해 나가는 미국 선조들이 인디언 들을 살상한 것은 미국 역사 속의 한 치부로 기록될 수밖에 없다.

모친의 가르침에 따라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링컨 대통령 시대에 와서 뒤늦게나마 노예 제도의 잘못을 깨닫고 흑인 노예들을 해방시키려고 하였다. 이 때 이에 반대하는 남부의 농장 경영 주민들과의 갈등에 의해 연방 국가가 둘로 쪼개질 위기에까지 처했다. 그러나 신념을 가지고 임한 링컨 정부는 남부군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고, 마침내 노예 해방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기독교'정신 이 잘못을 바로 잡고 위기를 극복하는 힘이 된 것이다.

대외적으로는 세계 평화 유지의 사명을 자청하여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연합국의 승리로 이끌었다. 한국 전쟁에서도 침략당하여 위기에 몰린 남한을 지 키는 선봉대가 되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산업체들이 군부와 결탁하여 군산 복 합체를 이루면서, 미국의 세계 평화 유지라는 명분은 타락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 으니 바로 월남전 개입이다. 이 덕분에 무기를 생산하는 산업체들은 돈방석에 앉 게 되었지만 미국을 지탱해 오던 정신적 지주가 흔들리게 되어 버렸다. 이즈음에 또한, 종교의 자유라는 미명하에 학교에서의 기독교 교육이 폐지되었으니, 선조들 이 종교의 자유를 찾아 유럽에서 건너온 청교도들임을 생각할 때 역사의 아이러 니가 아닐 수 없다. 한편에서는 명분없는 월남전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징집되어 가서 아까운 생명들이 무의미하게 희생되고 있어 미국 사회에는 정신적 패배의식 이 만연하게 되었다. 젊은이들이 가치관의 혼란으로 방황하게 되고 히피가 이 시 대의 청년 문화를 대표하는 지경이 되었다.

1992년도 대통령 선거전의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는 지금, 두 후보가 서로 하나님이 자기편이라고 주장하는 모습을 본다. 그 정치가들의 속마음은 덮어두고 라도 여전히 기독교 신앙에 의존하여 유권자들에게 호소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미 국에는 희망이 살아있다고 생각된다.

'자본주의'와 '기독교'에 바탕을 두어 건국된 미국이 그 두 가지 사이의 갈 등과 조화에 따라 겪어온 변천을 개략적으로 살펴보았다. 비록 자본주의가 지금 까지 지구상에 존재해온 경제 체제 중에 가장 합리적임이 증명되고 있으나 단점 이 있을진대 미국의 경우에는 기독교 신앙이 이 약점을 보완하며 조화를 이루어 오늘날에 이르렀다. 근로자에게 갔어야 할 임금을 줄여서 남긴 수익이나 부도덕 하게 번 돈으로 교회에 헌금하는 기독교인들이 있고, 하나님께 바쳐진 교인들의 헌금을 인간적인 욕심에 사용하는 목회자들이 요즈음도 있고 보면, 미국 역사 속 에 나타난 기독교와 자본주의의 조화를 다시 한번 음미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 한다. (끝)